사용후핵연료, 이제는 책임져야 할 때
‘22.10.17 파이낸셜뉴스 이유범 기자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에서 원자력의 역할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원자력 발전을 통해 생산한 값싸고 우수한 품질의 전기가 경쟁력 있는 상품의 개발과 국민 생활 편의에 기여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전히 우리나라는 원전을 통한 전력생산 비중이 크다. 지난 2021년 기준 원자력 발전의 비중은 27.4%로 전체 발전비중의 4분의 1을 넘게 차지한다. 전력소비량에 따라 발전 여부가 결정되는 가스발전, 날씨에 영향을 받는 태양광·풍력과 같은 재생에너지와 다르게 원전은 24시간 연속으로 운전돼 발전의 기반을 이루는 기저발전이라는 점에서 실제 비중은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원자력 발전 이후 나오는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고민은 수십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사용후핵연료를 보관 중인 원전 내 저장수조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필자가 과거 에너지를 담당했던 당시 박근혜 정부는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 등을 따로 보관할 수 있는 고준위 방폐장을 짓기 위해 2013년 10월부터 2015년 6월까지 20개월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했다. 이후 필자가 다른 출입처로 떠났던 2016년 산업부는 공론화위가 마련한 권고안을 바탕으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방폐장 부지를 2028년까지 선정해 2053년께 본격 가동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해 11월 산업부는 이런 계획을 추진할 근거법인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부지선정 절차 및 유치지역 지원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렇게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한걸음을 내딛는 듯 보였다.
그리고 2022년에 에너지를 다시 담당하게 됐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사용후핵연료 정책은 지난 정권을 거치며 오히려 후퇴했다. 발의된 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자동 폐기됐고, 정권이 바뀌면서 산업부는 공론화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지난 정권이 했던 일은 무조건 인정할 수 없다는 악습이 이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가 197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후, 사용후핵연료는 지난 2021년 기준 1만7862톤이 발생해, 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임시 저장시설에 보관 중이다. 원전 가동을 시작한 이상 발생한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처리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다.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 전북 부안에 건설을 추진했지만 극심한 사회적 갈등 끝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방폐장)만 경주에 지은 상태다. 이후 이명박 정권은 책임있는 자세 없이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음 정권으로 미뤘다. 박근혜 정부에서 논의가 다시 시작됐지만 '탄핵'으로 동력을 잃었고, 문재인 정권은 정치적으로 접근하면서 방치했다.
지하 사일로에 차곡차곡 쌓아서 저장 중인 중저준위 방폐물 Ⓒ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올해 6월 말 기준 각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포화 예상 시점은 고리·한빛 원전 2031년, 한울 원전 2032년, 신월성 원전 2044년, 새울 원전 2066년 순이다. 고리·한빛 원전의 경우 포화 시점까지 10년도 남지 않았다.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더이상 미룰 문제가 아니다. 원자력을 사용한 이상 그에 맞는 책임도 져야 한다.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 접근법을 버려야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사용후핵연료' 특별법을 하루 빨리 처리하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 미래 세대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