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우리가 이용하기까지
석유는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옷, 손에 쥔 핸드폰, 우리 주변의 온갖 화학품 및 플라스틱을 이루는 원자재입니다. 또 자동차를 비롯한 여러 이동 수단과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의 에너지원이기도 하지요. 이처럼 세상 거의 모든 것이 석유로 통하는 현재, 우리는 ‘석유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석유나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고갈될 유한한 자원이라는 점, 그리고 연소 과정에서 탄소화합물이 배출된다는 점입니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는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주범이며, 화석연료 활용 이래로 계속해서 뜨거워진 지구는 기후변화에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최근 더 빈번해진 극단적 이상 기온, 대형 산불, 엄청난 폭우와 거대한 태풍처럼 특이한 기상 현상들도 기후변화의 영향이라고 설명합니다.
기후변화가 가속화됨에 따라 전 세계는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석유 시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탄소중립’을 선언하였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1997년 교토의정서와 2015년 파리협약에 이어, 2021년 말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도 탄소 배출량 감축과 지구 온도 상승 제한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그렇다면 석유 시대 다음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탄소중립 시대의 에너지, 수소

[그림1] 호주의 수소산업 개념도. 수소는 전체 에너지 시스템을 아우르는 인프라 산업입니다.
따라서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지요. © 수소뉴스
현재 수력, 풍력, 태양광 등 다양한 재생에너지 형태로 대체 에너지 활용 방안이 개발되고 있지만, 아직 석유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고 지배적인 에너지원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차세대 에너지원이 반드시 한 가지일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친환경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를 찾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수소’입니다.
수소는 산소와 화학반응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는데, 이 과정에서 물 외에 다른 환경오염 물질은 거의 배출하지 않습니다. 또한 수소는 우주 질량의 75%를 차지할 정도로 흔해 고갈 위험이 없고 지속 가능하며, 저장과 운송이 쉽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수소를 포집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를 친환경적이면서도 유용한 에너지원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림2] 수소에너지 중심의 생태계. 탄소 기반 에너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기존의 에너지 체계를 대신합니다.
‘탄소경제’ 가고 ‘수소경제’ 온다
이처럼 기존의 탄소경제에 대응하여 수소의 형태로 에너지를 생산, 전달, 소비하는 시스템을 ‘수소경제’라고 하며, 수소경제에서 에너지 화폐는 다름 아닌 수소입니다. 그리고 수소의 생산-저장-운송-충전-활용의 사슬을 둘러싼 시장과 기술, 규제 등 수소경제와 관련된 산업 전반을 ‘수소생태계’라고 부릅니다. 우리 정부는 2021년 11월 ‘제1차 수소경제 이행 기본계획’을 발표하여 앞으로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수소의 생산

[그림3] 수소에너지를 만드는 세 가지 방법 © 한화
수소는 크게 세 가지 경로로 생산됩니다. 첫째는 석유화학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부생수소를 포집하여 활용하는 것입니다. 부생수소의 경우 공장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기에 생산 단가 측면에선 가장 우수하지만, 생산량을 필요한만큼 임의로 조절하는 것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물을 이용하여 천연가스의 화학반응을 이용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생산 단가 측면에서 우수하지만, 원료로 천연가스를 사용하여 탄소가 배출되므로 수소기반 에너지 체계로 이행하는 데 과도기적인 형태로 여겨집니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얻은 수소를 ‘회색 수소(그레이 수소)’라고 부릅니다.
세 번째는 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소를 생산하는 방식입니다. 물을 전기분해할 때는 수소와 산소만이 발생하고, 이 과정마저도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탄소가 배출되지 않습니다. 이 특징을 반영해 이 방식으로 생산한 수소는 ‘녹색 수소(그린 수소)’라고 부릅니다.
수소의 저장과 운송

수소를 운반하는 데 사용하는 수소튜브트레일러 © 서초뉴스
생산된 수소는 크게 기체와 액체의 두 가지 형태로 저장할 수 있습니다. 우선 가장 보편화된 방식은 ‘고압기체 저장기술’입니다. 부피가 큰 수소 기체에 압력을 가해 최대한 압축하여 고압용 용기에 보관하는 것이지요. 이 기술은 수소차에 적용할 만큼 편리한 것이 장점으로, 현재 기술로 수소차 저장 용기에는 700기압, 운송용으로 쓰는 튜브트레일러에는 200기압의 수소를 주입합니다. 이 방식은 주입 시 고압압축 과정이 필요합니다.

액화수소(왼쪽)와 기체수소(오른쪽)의 비교. 수소를 액체 상태로 운반, 보관하면 훨씬 높은 효율로
수소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 SK ENS
주목받는 액화수소 시대의 개막
한편 수소를 대규모로 운반할 때는 ‘액화 저장기술’이 더 유용합니다. 액화수소란 기체인 수소를 액체로 만든 것을 뜻합니다. 수소는 상온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는데요, 이를 영하 253도 이하 온도에서 냉각시키면 액화수소가 됩니다. 액화수소는 기체수소보다 부피가 800분의 1까지 줄어들기 때문에 좁은 면적에 많은 양을 저장할 수 있고 충전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다만 영하 253도라는 아주 낮은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기술과 시설 개발에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습니다.
실제로 액화수소식 탱크로리는 앞서 언급한 고압수소가스식 튜브트레일러보다 1회 운송량 기준 10배 이상 많은 수소를 실을 수 있어 운송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수소를 냉각시키면 압력을 조금만 가해도 부피가 더 잘 줄어들기 때문에, 저장 압력 또한 3기압 정도로 낮아 보다 안전하며 경제적입니다. 충전 속도도 빠르고 충전소 설치 시 부지면적을 줄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로켓 연료를 저장할 때도 이 기술을 활용합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세계의 관심이 액화수소 개발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액화수소를 생산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과 기술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산업부는 2021년 9월 액화수소 플랜트를 포함한 총 25건의 실증특례를 승인한 바 있습니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SK E&S와 같은 기업들은 액화수소 플랜트충전소 구축운영과 액화수소 운송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화학적 저장기술’ 혹은 ‘액상 저장기술’은 수소 기체를 직접 액체로 만드는 대신 화학 반응을 통해 액상의 화합물로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기술은 고압이나 극저온 조건을 만들지 않고도 많은 양의 수소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수소를 질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NH_3)로 만들거나, 톨루엔으로 메틸시클로헥산(MCH)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비록 추후 수소를 사용하기 위해 추출 과정이 필요하지만, 수소를 액화할 때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액상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더 편리합니다.
나아가 최근에는 상온 및 저압 조건에서 금속 원소에 수소를 결합시켜 금속수소화물을 만들거나, 다공성 탄소 재료에 수소를 가두는 방법 등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기술들이 새롭게 개발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 2030년까지 수소경제 전반에 43조 투자
수소 기본계획에 의하면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국내 수소 공급량을 2020년 대비 약 18배인 390만 톤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또한 2022년 7월 발표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에도 “청정수소 공급망을 구축하고 세계 1등 수소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가 포함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성장잠재력이 높은 5대 핵심분야인 △수전해 △연료전지 △수소선박 △수소차 △수소터빈 및 고부가 소재·부품 핵심기술에 대한 자립력을 기르겠다는 계획입니다.
정부뿐 아니라 민간기업도 나섰습니다. 2022년 3월 2일 개최한 ‘제3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SK·현대자동차·포스코·한화·효성 등 대기업들이 2030년까지 수소경제 전반에 43조 4천억원 규모의 투자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정부와 민간기업이 함께 청정수소 기반 생산-유통-활용 전(全)주기 생태계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사용 대비 감소한 탄소 배출량, 그리고 수소경제 전환을 통한 경제효과가 관건이 될 예정입니다. 전 세계가 탄소 감축에 동참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수소경제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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