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철강산업도 탄소에서 벗어난다, 수소환원제철
국가의 기간산업이자 문명의 토대인 철강산업은 말 그대로 꺼지지 않는 용광로입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철강산업의 탈탄소화>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철강 수요는 17억 7,200만 톤으로 연간 1~2% 증가하여 2050년에는 약 27억 47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그만큼 철강산업은 탄소집약적인 산업이기도 하죠. 2018년 기준 세계는 조강(crude steel)을 생산하기 위해 33.6EJ(엑사줄)의 에너지를 소비했고, 이는 전 세계 산업 부문 에너지 소비량의 20%에 달합니다. 엄청난 양이죠? 탄소중립이 경쟁력이 된 지금, 철강산업계는 신공정 기술을 개발해 그린철강의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해 철을 생산하는 기술인 ‘수소환원제철’인데요, 과연 어떤 원리일까요?
용광로 없는 제철이 가능하다?

수소 환원 반응과 기존 환원 반응의 차이. © 포스코
철강 생산 공정에서는 기본적으로 석탄에서 발생하는 가스인 일산화탄소를 환원제로 사용합니다. 자연 상태의 철은 적철광, 자철광과 같이 산소와 결합한 산화물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제철 공정에서 환원 공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죠. 탄소가 다량으로 배출되는 지점이 바로 이 환원 공정이기도 합니다. ‘고로’라고 하는 큰 용광로에 철광석과 석탄을 넣어 1500°C 이상의 고온에서 녹이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데요, 이때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게 됩니다.
친환경 철강인 수소환원제철은 ‘환원’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광석에서 산소를 분리하는 환원 과정에서 석탄 가스가 아니라 수소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물과 함께 철이 생성되는데, 이를 직접환원철(DRI, Direct Reduced Iron)이라고 합니다.
환원제로 석탄 대신 수소를 쓴다는 것은 언뜻 보면 단 하나의 공정만이 변한 것 같지만 사실 엄청난 변화를 만드는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수소환원제철이 어떤 변화를 만들까요? 바로 우리가 제철소 하면 떠올리는 고로, 즉 용광로가 필요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고로에서 석탄과 철광석을 한 데 녹이는 공정이 핵심이었는데 이 과정이 사라지니 용광로와 그에 따른 부속 설비도 없어지는 것이죠. 수소환원제철에서는 그 대신에 ‘유동환원로’와 ‘전기로’라는 설비에서 수소와 철광석의 환원 반응을 수행합니다. 먼저 환원로에서 철광석을 고온으로 가열된 수소와 만나게 하면 고체 철이 나옵니다. 이를 전기로에서 녹여 쇳물을 만듭니다.
그럼 전력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기존 고로 방식에서는 환원 반응에서 나오는 부생가스로 다른 공정의 연료로 사용했는데, 수소환원제철에서는 100% 전기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100% 수소만 사용하기 때문에 부생가스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죠. 수소환원제철에서는 신재생에너지로 이 전기 공급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수소환원제철의 기본 개념은 ‘그린수소’입니다. 유동환원로에 투입되는 수소도, 설비를 구동하는 전기도 모두 무탄소 에너지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020년 8월에 수소환원제철 시범 공장을 가동한 스웨덴 철강사 SSAB는 스웨덴 다국적 전력회사 바텐팔(Vatenfall)과 협력하여 신재생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기술력 갖춘 우리나라, ‘그린 철강’ 선도할 수 있을까?
다만 아직 전 세계적으로 100% 수소만 사용해 환원철을 생산하는 환원로는 상용화되지 못했습니다. 현재 기술로는 석탄 또는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를 일부 활용해 직접환원철(DRI)을 생산합니다.
우리나라는 100% 수소환원제철로 가는 기술 선도국가입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고유 기술인 ‘파이넥스(FINEX, Fine Iron ore Reduction) 공정’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파이넥스는 가루 형태의 철광석과 석탄을 고로에 넣지 않고, 유동환원로와 용융로라는 설비를 통해 쇳물을 생산합니다. 파이넥스는 공정 중에 발생하는 수소 25%와 일산화탄소 75%를 환원제로 사용함으로써 현재까지 수소환원제철 구현에 가장 근접한 기술입니다.
포스코는 파이넥스에 적용된 유동환원로 기술을 바탕으로 수소를 100% 사용하는 하이렉스(HyREX)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부 및 국내 철강사와 협업해 2028년까지 포항제철소에 연산(연간 생산 능력) 100만t 규모의 데모 플랜트를 건설할 예정인데요, 다가올 2030년에는 100% 수소환원제철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용광로, 즉 고로가 있는 기존 공정과 포스코만의 수소환원제철 공정의 차이 © 포스코